[역사] 쌍룡검,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사라진 실전 검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사용한 실전 검인 쌍룡검(조선미술대관, 1910)

혜문스님의 ‘칼 이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칼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사용한 칼은 현충사의 칼(197cm)이 아니다. 현충사에 보관된 칼은 의전용 칼이고 장군이 전투에서 실제로 휘둘렀던 칼은 ‘쌍룡검’이라는 이름의 칼이다.
현재 이순신 장군의 칼은 총 6자루가 보존되고 있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국보 341호로 2자루가 보존되어 있고, 통영 충렬사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들은 명나라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하사한 8종류의 유물(15점) 중 일부인 귀도 2자루와 참도 2자루가 보물 440호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이 칼들은 모두 의전용이자 지휘용으로서 실전에서 사용되었던 칼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쌍룡검’은 1910년에 간행된 ‘조선미술대전’에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왕실의 궁내부 박물관에 1910년도까지만 해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칼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유실된 것이다. 혹은 도난당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의 실전 검 ‘쌍룡검’은 우리의 곁에 없다. 1910년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것이 해방 이후인 오늘날 없으므로 이 칼은 일제 때 일본이 강제로 빼앗았거나 폐기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쌍룡검’은 그냥 일개 장수가 실전에 사용했던 칼이 아니다. 이는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린 칼이다. 그 칼을 후손인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조선미술대전’이란 책자를 통해서만 그 칼을 볼 수 있는 우리에게 있어 그 칼은 신기루만이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칼 자체로서도 참으로 원통한 일일 것이다.

우리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서 수시로 분향한다. 이제는 분향과 함께 “잃어버린 쌍룡검을 찾아내겠현재 이순신 장군의 칼은 총 6자루가 보존되고 있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국보 341호로 2자루가 보존되어 있고, 통영 충렬사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들은 명나라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하사한 8종류의 유물(15점) 중 일부인 귀도 2자루와 참도 2자루가 보물 440호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이 칼들은 모두 의전용이자 지휘용으로서 실전에서 사용되었던 칼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쌍룡검’은 1910년에 간행된 ‘조선미술대전’에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왕실의 궁내부 박물관에 1910년도까지만 해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칼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유실된 것이다. 혹은 도난당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의 실전 검 ‘쌍룡검’은 우리의 곁에 없다. 1910년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것이 해방 이후인 오늘날 없으므로 이 칼은 일제 때 일본이 강제로 빼앗았거나 폐기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쌍룡검’은 그냥 일개 장수가 실전에 사용했던 칼이 아니다. 이는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린 칼이다. 그 칼을 후손인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조선미술대전’이란 책자를 통해서만 그 칼을 볼 수 있는 우리에게 있어 그 칼은 신기루만이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그 칼 자체로서도 참으로 원통한 일일 것이다.

우리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사당에서 수시로 분향한다. 이제는 분향과 함께 “잃어버린 쌍룡검을 찾아내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후손이자 후배로서의 도리가 아닐까?다”고 다짐하고 약속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후손이자 후배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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